극장 영화/리뷰

영화 [로스트 도터] - 위험하지만 설득력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

범블러 2022. 8. 9.

영화 [로스트 도터 (THE LOST DAUGHTER, 2021)]는 한국에서 2022년 7월 14일에 개봉한 미국 영화입니다. 2021년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것과 배우인 '매기 질렌할'의 장편 극영화 연출 데뷔작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로스트-도터-2차-포스터
영화 [로스트 도터] 2차 포스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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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성애의 신화와 민낯

    '모성애'는 동서고금, 인간과 동물을 막론하고 신성하고 숭고한 것으로 받들어져 온, 암컷인 생물이 자신의 새끼를 아끼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많은 생물들이 자기가 낳은 새끼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려고 하지만 특히 한 배에 새끼를 적게 배고, 새끼 때 비교적 무력한 포유류 어미들의 모성애가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여기에는 인간도 포함되며 모성애는 자식을 양육하는 문제에 있어 많은 여성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죠. 하지만 시대가 변하여 여성들의 인권이 신장되고 양성평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임신과 출산, 육아에 있어 여성들의 책임을 강요하던 사회적인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어온 일방적인 희생과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생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인 미혼 여성 가구와 딩크족의 증가 등으로 인한 출산율의 저하로 그런 움직임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데요, 어쩌면 터부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모성애의 진짜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한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로스트 도터]입니다.

    불길함과 서스펜스

    오프닝 장면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습니다. 중년의 여성이 왠지 모르게 심각한 표정으로 해변을 향해 걸어오다가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집니다. 'the LOST DAUGHTER'라는 타이틀이 화면에 떠오르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죠. 여러 가지 언어학을 공부한 대학교수인 '레다 (올리비아 콜먼扮)'는 방학을 맞아 혼자 그리스의 외딴섬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해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레다, 그러나 그 지역의 유지인 듯한 대가족이 해변에 찾아오면서 조용하고 평화롭던 레다의 휴가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죠. 대가족의 일원인 '니나 (다코타 존슨扮)'와 그녀의 딸 '엘레나'를 바라보며 레다는 깊은 상념에 빠지는데요. 그것은 니나와 엘레나가 레다에게 오래전 '젊은 시절의 레다 (제시 버클리扮)'와 그녀의 딸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영화는 그리스의 현재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젊은 시절 레다의 모습을 번갈아 비추며 진행되죠. 영화 속에는 그 의미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마치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한 이미지들이 다수 등장하는데요, 예를 들면 레다가 처음 숙소에 도착했을 때 레다를 놀라게 만드는 등대의 불빛이라든가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모습으로 탁자 위에 놓여있었지만 속을 들춰보니 썩어있던 과일들, 레다의 베개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 레다의 등 위로 떨어졌던 솔방울 등은 대수롭지 않은 이미지들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예민하고 까다로운 레다의 캐릭터를 드러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관객들에게 무언가 불길한 일들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작은 '맥거핀 (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적 장치)'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앞서 말했던 이미지들이 형성하는 불길한 영화의 분위기라든가 레다의 과거 회상 속에서 마치 큰 딸인 '비앙카'를 잃어버린 듯한 모습, 그리고 결정적으로 엘레나의 인형을 훔치는 레다의 모습을 보여주며 레다가 인형을 훔친 이유를 관객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진행까지 관객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만 레다의 속마음이라든가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감추고 있어 극적인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죠. 결국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는 전개가 이어지기도 하고 맥거핀을 통해 관객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정확하게 해소되지 않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결말까지 흘러가는 과정에서 관객들을 집중하도록 만드는 데에 이런 장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복잡한 것이 가장 평범한 것

    영화 속에서 젊은 시절의 레다 역할을 연기한 제시 버클리는 영화 관련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인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가장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요. 제시 버클리의 이야기처럼 영화는 주인공인 레다의 모습을 다면적인 방식으로 복잡하게 묘사합니다. 이것은 특히 제시 버클리가 연기한 젊은 시절 레다의 모습에서 두드러지는데요, 두 딸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면서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던 젊은 시절의 레다. 갈등 속에서 가족을 사랑하지만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 점차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레다는 결국 가족을 떠나 자신의 사회적인 성공을 위한 길을 선택하게 되죠. 남편과 딸들 몰래 불륜을 저지르며 애인에게 "딸들과의 전화는 자신을 지루하게 하고 자신도 딸들을 지루하게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레다의 얼굴은 마치 그동안 신성화되던 모성의 민낯을 드러내 듯 많은 여성들에게 고통스럽지만 부인할 수 없는 진실로 다가오는 표정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레다가 가족을 영원히 저버린 것은 아니었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니나와 레다가 나눈 대화, 그리고 두 번째 딸인 마사와 레다가 나누는 통화 내용 등을 통해 그녀가 일정한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고 난 이후 다시 가족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에 아이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은 여전히 레다의 마음속에 큰 죄책감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요, 니나가 레다에게 아이들을 떠났을 때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을 때 "너무 좋았다."라고 입으로는 이야기하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레다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선택이 비록 비난받을만한 것이었다고 해도 매우 인간적인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사이 엘레나를 숨겨둔 것이 바로 레다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데요, 니나와 엘레나를 바라보며 레다는 니나도 엘레나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엘레나의 인형은 왜 가져간 것일까요?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그보다는 더 나은 대답이 있지 않았을까요? 과연 레다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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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년생 김지영 vs 로스트 도터

    [로스트 도터]를 보며 어딘지 모르게 한국 영화 [82년생 김지영 (2019)]과 닮은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과 페미니즘을 담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 여성 감독과 여성 배우가 주축이 되어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 등 두 영화가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처럼 느꼈습니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이 남성과 여성을 흑백으로 구분하며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문제라는 식의 다소 편중된 시선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반면, [로스트 도터]는 여성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 '인간'의 이야기라는 인상을 주며 여성의 삶에 대한 입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 용기 있는 도전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 용기 있는 도전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Good Luck to You, Leo Grande, 2022)]는 2022년 8월 11일 한국 개봉한 영국, 미국 합작의 영화입니다. 아카데미 2회 수상자이자 연기 경력 40년 차인 베테랑 배우 '엠마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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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또 하나의 페미니즘 영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또 하나의 페미니즘 영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Where the crawdads sing, 2022)]은 2022년 11월 2일 한국 개봉하는 미국의 영화입니다. 2018년 미국에서 출판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델리아 오언스'의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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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스트 도터] 메인 예고편

    영화 [로스트 도터]는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정해진 역할대로 살아가야만 했던 한 여성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영화적인 기법을 통해 설득력 있게 표현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의 의견과 잣대로 그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댓글을 통해 소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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