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영화/리뷰

영화 [비상선언] - 초중반의 비상(飛上), 후반의 추락(墜落)

범블러 2022. 8. 4.

영화 [비상선언 (EMERGENCY DECLARATION, 2022)]은 2022년 8월 3일에 개봉한 한국영화입니다. [연예의 목적 (2005)], [관상 (2013)], [더 킹 (2017)] 등의 영화들을 연출했던 '한재림'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극영화이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배우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비상선언-공식-포스터
영화 [비상선언] 공식 포스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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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선언

    항공기 운항 중에 연료가 부족하거나 항공기에 기술적인 결함이 생겨 더 이상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때 항공기 조종사는 '비상선언 (Emergency Declare)'을 선포하여 비행하고 있는 다른 모든 항공기보다 우선적으로 공항에 착륙하는 우선권을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일단 공중으로 이륙한 이후에 항공기 안에서 테러 등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항공기 안의 승객들은 꼼짝없이 기내에 갇혀 두려움에 떠는 절망적인 상황을 겪게 될 텐데요. 이런 절체절명의 사태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박진감 있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한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비상선언]입니다.

    뿌옇게 필터가 씌워진 화면, 하레이션과 핸드헬드

    영화의 초반,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마치 카메라 렌즈 앞에 필터가 씌워진 것처럼 뿌옇게 번지는 화면과 '하레이션 (피사체 주위에 나타나는 희미한 영상의 무리나 후광)'.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계속해서 조금씩 흔들리는 프레임이었습니다. 보통 영화를 비롯한 서사가 있는 콘텐츠에서 이런 효과를 사용하게 되면 그 이야기가 카메라에 의해 촬영된 장면이라는 것을 관객이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에 특별한 의도가 있거나 강조해야 할 부분이 아니면 이런 효과들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요. 짧고 강렬하게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 느낌이 아닌, 등장인물들이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 꽤 긴 시간 동안 이런 효과들을 지속하고 있어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런 효과들이 관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뿌옇게 번지는 화면을 통해 상당한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치 코로나 19가 처음으로 창궐하기 시작할 때의 느낌과 비슷한, 정확하게 눈에 포착되지는 않지만 불쾌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공기 중에 퍼져있는 것 같은. 이런 감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비행기 테러의 범인인 '류찬석 (임시완扮)'이 이후 비행기 안에서 벌이는 생화학테러에 대한 복선을 관객들에게 미리 전달하기 위해 이런 효과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추측을 하게 되었죠.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부터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는 프레임 또한 비행기 안에서의 사건에 대한 '전조 (前兆)'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 형성 속에 극의 초반, 등장인물들이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까지 영화의 이야기는 비행기에 올라탈 사람들의 모습과 앞으로 비행기 안에서 펼쳐지게 될 테러, 그 테러에 대항할 지상의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며 비행기가 하늘로의 이륙을 준비하듯, 서서히 이야기의 전개를 준비합니다.

    빠르게 소멸하는 갈등의 주체, 실감 나는 비행기 추락 장면

    비행기가 하늘에 이륙한 이후부터 이야기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개됩니다. 테러의 범인인 류찬석은 자신의 몸속에 숨겨 가지고 들어온,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천식 호흡기를 이용해 비행기 안 화장실에 분사하는데요. 마치 실험실 안의 쥐처럼 비행기 안의 사람들 모두가 도망갈 곳 없이 밀폐된 공간에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자신은 먼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어버립니다. 이렇게 이야기의 주된 갈등의 원인이 되어야 할 주체가 극의 초반부에 빠르게 사라져 버린 후 이야기의 갈등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형태로 나뉘어서 전개되는데요. 우선 류찬석이 비행기 안에 퍼뜨려놓고 간 '바이러스'가 이야기의 가장 큰 갈등의 이유로 자리 잡습니다. 비행기 안의 사람들은 이미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게 되죠. 그리고 하나의 커다란 바이러스 덩어리가 된 이 비행기와 그 비행기 안 사람들을 다시 지상에 착륙시켜야 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이미 비행기 안의 동영상이 SNS를 통해 인터넷에 퍼지고,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40%가 넘는다는 정보가 확실해진 상황 속에서 미국과 일본은 자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비행기를 자국에 착륙시킬 수 없다는 결정을 하게 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내에서도 비행기 안에 퍼진 바이러스의 백신과 항바이러스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학계의 목소리가 발생하자 비행기를 한국에 착륙시킬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비행기를 탈취한 테러리스트와 그에 대항하는 한국 정부의 협상 과정이라는 일반적인 항공 재난 영화에서의 갈등 구조가 아닌, 테러의 주체가 죽고 난 뒤 파생되는 갈등의 모습들로서의 전개는 전 세계적으로 무차별 테러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의 모습과 닿아있으면서도 기존의 항공 재난 영화들과는 다른 신선한 서사의 전개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항공기 기장의 바이러스 감염과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상공에서의 비행기 추락 장면은 영화의 시각적인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으로 기억에 남았는데요. 비행기 추락 과정에서 360도로 회전하는 선체 안, 복도에 서있는 승무원들이 바닥에서 천장으로 떨어지고 안전벨트를 맨 채 괴로워하는 승객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화면에 드러나는 장면 촬영을 위해 영화의 제작진은 실제 비행기의 부품들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세트를 360도로 회전시키는 촬영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는 할리우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세트 촬영이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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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모없이 계속되는 반전,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선택

    차곡차곡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힘을 쌓아가던 전반부와 새로운 이야기 전개, 박진감 넘치는 장면의 표현으로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들었던 중반부와는 다르게 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관객으로서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요. 우선 항공기가 미국 하와이에 도착했지만 미국 관제탑에서 항공기의 착륙을 거부하여 비행기가 한국으로 회항하는 부분까지는 나름대로 서사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회항한 뒤 연료 부족으로 인해 일본 나리타 공항에 비상 착륙하려고 할 때 일본 당국이 이를 거부하는 장면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상으로도 굳이 필요한 장면인지 의구심이 들었는데요. 일본 공항 착륙 시도 장면 이후부터는 이야기의 논리적인 흐름이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건의 개연성 문제에서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만한 전개가 이어졌기 때문에 시나리오 상에서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한재림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국 내부에서조차 비행기를 한국에 착륙시키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는 투표 상황이 이어지자 비행기 내부에 남은 100명이 넘는 생존자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자신들은 한국을 위해 비행기를 한국에 착륙시키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전하는 부분은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치 인간의 본성을 정확하게 선과 악으로 나누고 있는 듯한 이야기 전개는 좋고 나쁘다는 평가를 넘어 위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비상선언] 공식 예고편

    영화 [비상선언]은 안정감 있는 이야기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재난 장면 표현으로 인해 인상적인 초중반을 보여주는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쓸데없이 계속되는 반전의 서사와 사회 드라마적인 면에서 다소 위험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표현되는 감독의 사상이 영화의 전체적인 만듦새를 망가뜨리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댓글을 통해 소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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