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영화/리뷰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 잊히지 않는 얼굴들

범블러 2022. 7. 24.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Quo vadis Aida?, 2020]는 2021년 5월 19일 한국에서 개봉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의 영화입니다. 1995년 7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세르비아의 접경 도시인 '스레브레니차'에서 발생했던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쿠오바디스-아이다-메인-포스터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메인 포스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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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고슬라비아의 가슴 아픈 역사

    혹시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를 기억하시나요? 유고슬라비아는 우리말로 직역하면 '남슬라브인의 땅'이라는 뜻으로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에 1918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했던 소련과 비슷한 형태의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입니다. 유고슬라비아는 총 6개의 개별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가 그 구성국이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대항하여 외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힘을 모으기 위해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우며 하나의 연방국가로서 이름을 내걸고 국토를 공유하며 하나의 통치조직에 지배를 받는 나라로 함께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소련의 패배로 끝나고 1991년 소련이 해체하게 되면서 그에 영향을 받은 유고슬라비아 또한 종교와 문화가 다른 개별 국가 간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평화로운 대화와 협상의 분리가 아닌, 피로 얼룩진 무력 충돌에 이은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특히나 1992년 4월 6일부터 1995년 12월 14일까지 약 3년 8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보스니아 전쟁에서는 수많은 보스니아인들이 민족청소라는 이름하에 학살되어 아직까지도 그 신원을 밝히지 못한 유골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하죠. 이렇게 실제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있는데요.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쿠오바디스, 아이다]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

    때는 1995년 7월 경, 보스니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서방세력에 의한 종전 압박이 심해지자 세르비아 군대는 스레브레니차 지역에서 보스니아인들이 모여있는 '월경지 (越境地): 특정한 나라나 행정구역에 속하면서 본토와는 떨어져 다른 나라 영토나 다른 행정구역에 둘러싸인 땅'을 빠르게 정리해야겠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안전구역에 침입하면 전투기를 동원하여 세르비아 군대를 포격하겠다는 'UN' 측의 최후통첩이 있었지만 포로들을 살해하겠다는 세르비아 군대의 협박에 의해 결국 포격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요. 이후 압도적인 머릿수와 세르비아 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기갑전력을 앞세워 스레브레니차 안전구역에 침입한 세르비아 군대는 보급 부족으로 전투력을 상실한 보스니아 군대와 UN에서 파견한 네덜란드 평화 유지군을 순식간에 제압하며 당시 UN 평화군을 이끌던 '톰 카레만스' 대령과 보스니아인들의 처분을 두고 협상을 벌이게 되죠. 가차 없이 모두를 죽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세르비아 군대를 이끌던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은 협상 테이블에서 신사적인 모습을 보이며 죄가 없는 민간인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아이다'는 전쟁 전에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지만 전쟁 이후 UN에 소속된 통역사로 활동하며 UN군과 보스니아인들 간의 소통과 세르비아인들과 UN군의 소통 등에 참여하여 급박하게 전개되는 사건들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아이다는 남편인 '니하드'와 두 아들 '함디야', '세요'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결국 세르비아 믈라디치 장군의 신사적인 태도가 보스니아인들을 안심하게 만든 뒤 대량 학살하기 위한 기만 행동이었음이 드러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아이다는 남편과 두 아들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요?

    야스밀라 즈바니치

    영화의 감독을 맡은 '야스밀라 즈바니치'는 1974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라예보 극예술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1997년 예술가협회 '데블로카다 (Deblokada)'를 설립해 영화 제작자 및 각본가, 감독 등으로 폭넓게 활동해오고 있는 인물인데요.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이 벌어질 당시 야스밀라 즈바니치는 사라예보의 대학생 신분이었고 세르비아 군대에 의해 약 4년 동안 포위되었던 사라예보에서 살아남으며 스레브레니차 학살의 피해자들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죠. 야스밀라는 이미 2006년 사라예보 전쟁 강간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그르바비차]라는 작품을 통해 '제56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녀의 영화는 주로 보스니아인들의 삶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연관된 문제들이나 주제 등을 탐험하고자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쿠오바디스, 아이다]라는 작품을 통해 야스밀라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장편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역사 속 약자들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다루며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을 만들어낸 그녀의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대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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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의 의미

    영화의 제목인 '쿠오바디스 아이다. (Quo vadis, Aida?)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라틴어 경구인 "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이 말을 예수에게 했던 인물은 바로 '베드로' 였는데요.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자신이 지켜야 할 기독교도들을 버리고 피신하던 베드로는 하늘에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마주치게 됩니다. 베드로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어디론가 향하려고 하는 예수에게 베드로가 던졌던 질문이 바로 "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였죠. 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베드로가 자신의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대신해 예수 자신이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다시 한번 못 박힐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요. 이에 깨달음을 얻은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순교를 당하게 되죠. 'Quo vadis, Aida?'라는 영화의 제목은 "Quo vadis, domine?"라는 말과 겹치며 아이다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인물들로 인식하게 합니다.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적들이 득시글거리는 로마로 향하는 선택을 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위험에 처한 자신의 가족들과 보스니아인들 전체를 위해 아이다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죠.

    잊히지 않는 얼굴들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는 인물의 시선이 강조된 장면들이 인상적인 영화였는데요. 먼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프롤로그처럼 등장하는 아이다와 그녀의 가족들의 시선이 드러나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다의 둘째 아들로 부터 시작해 그녀의 남편 그리고 첫째 아들로 이어지는 화면과 화면 밖 오른편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세 인물의 시선들.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 세 인물이 시선이 향했던 곳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아이다의 모습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생각해 보니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아이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 가족의 상황을 은유하는 안타까운 장면으로 가슴속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다가 꿈속에서 보았던 동보스니아 최고의 헤어스타일을 가리는 축제에서 서로 손과 손을 마주 잡은 채 강강술래를 하듯 박자에 맞추어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던 사람들의 얼굴은 이후 함께 춤을 추던 이웃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이게 되는 참상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보스니아 내전이 담고 있던 보다 특별한 전쟁의 의미를 함축적인 장면을 통해 초현실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이 끝난 뒤 전쟁 전 자신이 살았던 집에 자신의 가족들을 죽인 세르비아 군 장교 가족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한 아이다가 학교 학예회 자리에서 그 장교의 아이를 포함해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계를 비롯한 여러 민족이 포함된 아이들의 얼굴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까지. 영화 속에 등장했던 그 수많은 얼굴들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영화 [쿠오 바디스, 아이다] 예고편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감독이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사건을 겪지 않은 관객들도 그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하며 뒤돌아 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본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댓글을 통해 소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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