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영화/리뷰

영화 [레이먼드 & 레이] - 용서라기보다는 인정하는 것

범블러 2022. 11. 5.

영화 [레이먼드 & 레이 (Raymond & Ray, 2022)]애플 TV 플러스에서 2022년 10월 21일에 공개된 미국의 영화입니다. 소설 [백 년의 고독 (1967)]의 작가인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 '로드리고 가르시아'가 영화의 감독을 맡았습니다.

 

영화 레이먼드 & 레이 포스터
영화 [레이먼드 & 레이] 포스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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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이 & 레이먼드] 줄거리

    한밤 중, 비가 오는 도로를 달려 '레이먼드 (이완 맥그리거扮)''레이 (에단 호크扮)'의 집에 도착합니다. 예정에 없던 방문에 레이는 총을 들고 레이먼드를 맞이하죠. 헝클어진 장발 머리에 거칠어 보이는 수염의 레이와 단정하고 정돈된 차림의 레이먼드는 형제라고 하기에 꽤나 차이가 있는 외모입니다. 그들은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죠. 레이먼드가 급하게 레이를 방문한 이유는 바로 그들의 아버지인 '해리스'의 죽음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과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레이는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레이먼드가 간절하게 레이를 설득해 결국 함께 아버지의 장례식장으로 향합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그들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말년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을 마주칩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버지 해리스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죠. 해리스는 아들들이 자신의 관을 넣기 위한 구덩이를 직접 파주길 바랐습니다. 결국 레이먼드와 레이를 필두로 해리스의 아들들이 아버지를 위한 구덩이를 파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상처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가운데, 레이먼드와 레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을까요?

    인간은 입체적인 존재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통해 관객은 인간이 입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연스레 떠올리게 됩니다. 먼저 주인공인 레이와 레이먼드의 캐릭터를 들여다보면 레이는 영화 속 첫 등장에서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외모에 상의를 탈의한 채 총을 들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터프가이의 모습이죠.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레이는 현재의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학창 시절 운동을 못하는 모범생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게다가 평생 한 여자만을 마음에 품어왔으며, 트렘펫을 연주하는 감성적인 예술가 기질을 보여주기도 하죠. 레이먼드의 경우 영화의 초반, 지금 자신의 인생이 고요하고 평화롭다고 말하며 정돈되고 단정한 모습의 '너드(Nerd)'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레이먼드는 학창 시절 운동을 좋아했으며 한 성격 하는 인물이었던 것이 밝혀지죠. 사연 없이 평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두 번의 이혼을 경험했으며 그중 한 번의 이혼에서는 아버지인 해리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또한 드러납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에는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루시아 (마리벨 베르두扮)'와 묘한 기류를 형성하며 비교적 자유로운 이성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연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해리스의 캐릭터 또한 한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레이먼드와 레이가 기억하는 해리스는 학대와 폭언을 일삼으며 아들들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와 해소할 수 없는 분노를 남긴 나쁜 아버지였습니다. 두 어머니들의 활기를 앗아가 버린 나쁜 남편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들이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해리스에 대해 호의적인 말들을 늘어놓습니다. 그가 재미있고 유쾌했던 사람이라거나 활기가 넘치고 씩씩한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특히 해리스와의 관계에서 아들을 낳은 루시아는 해리스가 그녀와 아들에게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해리스는 레이와 레이먼드와의 관계에서 그들에게 분노와 상처를 남긴 것에 대해 많이 후회하고 자책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년에는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겠죠.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뉘우침으로 해리스는 살아있을 땐 연락할 수 없었던 레이와 레이먼드를 자신의 장례식에 불러 두 아들이 품고 있던 분노와 상처를 달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도 관객들이 그 직업이나 나이, 인종 등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리스의 연인이었던 루시아의 경우, 레이와 레이먼드가 루시아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들은 루시아의 나이와 성별을 통해 그녀를 해리스의 가사도우미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루시아는 해리스의 연인이자 그 집의 주인이었죠. 해리스의 장례식 진행을 위해 등장하는 흑인 목사 또한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목사님의 모습과는 다른 외형입니다. 레이와 레이먼드의 또 다른 이복형제들은 겉모습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곡예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이렇게 영화 [레이먼드 & 레이 (2022)]는 한 명의 주인공만이 아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통해 인간은 한 면으로 표현되고 이해되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계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특히 부모와 자식, 자식과 부모 간의 관계는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자식들은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부모를 미래의 자신을 위한 첫 번째 롤모델로 삼게 되죠. 부모는 자식에게 그 존재 자체로 하나의 세상입니다. 자식이 어릴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죠. 반면 부모는 자식을 낳은 순간부터 대게 자식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게 됩니다. 자식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며 부모가 원한 결과이기 때문이죠. 그 무한한 책임감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때 그것은 가족과 자식을 위한 희생이나 삶의 의미 그 자체가 됩니다. 반대로 부정적으로 발현될 때는 자식에 대한 지나친 소유욕이나 집착 혹은 자식을 통한 대리 만족의 욕망이 되기도 하고요. 영화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레이 역할을 맡은 배우 에단 호크는 "가족이란 달리 말하면 인간 심리의 영역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사람의 몸과 마음속에 그려지는 보이지 않는 '지형'과도 같은 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의미죠. 나와 가족 간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에 따라 그 지형은 평탄한 초원이 될 수도, 험준한 협곡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레이 형제와 아버지 해리스 간의 관계는 평탄한 초원이라기보다는 험준한 협곡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특히 학창 시절 섬세한 감수성을 가졌던 레이는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폭언들이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았던 것 같고요. 그래서 레이먼드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레이에게 말했을 때 레이는 아버지가 혹시 자살한 것은 아니냐고 묻습니다. 레이는 아버지의 폭력성이 결국 아버지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상상해 왔다고 말했죠. 레이에 비해 레이먼드는 영화의 초반, 그나마 아버지 해리스를 이해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레이를 설득해 해리스의 장례식장에 데려가는 것도 레이먼드이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시시때때로 표출하는 레이를 자중시키는 것도 레이먼드이죠. 하지만 어쩌면 레이먼드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레이보다 더 큰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을 남겨야 하는 순간에 오히려 울분을 참지 못하고 형인 레이가 차에 챙겨 온 총으로 죽은 아버지를 쏜 것이겠죠. 레이먼드는 어린 시절 형인 레이와 함께 아버지 해리스에게 학대를 당한 것에 더하여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자신의 인생을 뒤흔들만한 충격적인 경험을 아버지를 통해 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첫 번째 아내와 아버지가 불륜을 저질러 아이를 낳은 일이었죠. 레이먼드는 그 아이가 아버지의 아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아이를 키웠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후 결국 첫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었죠. 겉으로는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레이먼드의 밑바닥에는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시종일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던 레이는 정작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을 남겨야 할 순간이 되자 자신이 아끼던 트렘펫을 들고 와 아버지를 위한 연주를 하기 시작합니다. 해리스는 레이의 어린 시절, 레이의 트렘펫 실력에 대해 재능이 없다며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퍼부었습니다. 그 때문에 레이는 트럼펫 연주를 좋아하면서도 평생 자신의 연주가 정말로 형편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마음껏 연주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해리스가 죽기 전, 병원에서 트럼펫 연주를 반복해서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레이는 무덤 앞에서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연주를 합니다. 어쩌면 레이가 바랐던 것은 아버지 해리스의 진심 어린 '관심''인정'이었을지도 모르죠. 이렇게 레이먼드와 레이에게 아버지 해리스는 험준한 협곡이다 못해 마치 암석이 비처럼 쏟아지는 어두운 골짜기와 같은 지형이었습니다. 아버지 해리스 또한 자신이 두 아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고요. 그는 두 아들을 자신의 장례식에 초대하여 마지막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아들들이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감정의 덩어리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두 아들 마음속의 험준한 협곡이 한순간에 평탄한 초원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암석의 비만큼은 멈추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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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라기보다는 인정하는 것

    레이먼드 역할을 맡은 배우 이완 맥그리거는 말했습니다.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레이먼드가 아버지 해리스를 용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요. 레이먼드의 마음속에서 벌어진 일은 '용서'라기보다 '인정'에 가깝다고 이야기했죠. 사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서의 사전적인 정의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이죠. 그러나 잘못을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용서가 되기에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 잘못된 행동이나 말을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에 더하여 그런 행동이나 말을 했던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나름대로의 답을 찾는 것까지가 용서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대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용서라는 것이 인간은 하기 어려운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용서하기 위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나에게 벌어졌던 불행과 내게 불행을 안겨준 대상이 이 세상에 충분히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의 불행과 그 불행을 안겨준 대상을 먼저 인정했을 때 우리는 용서라는 보다 깊은 차원에 도달하기 위한 발걸음을 뗄 수 있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믿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댓글을 통해 소통해 주세요!

     

    영화 [레이먼드 & 레이]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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