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영화/리뷰

영화 [다 잘된 거야] -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

범블러 2022. 11. 8.

영화 [다 잘된 거야 (Tout s'est bien passe, EVERYTHING WENT FINE, 2021)]는 2022년 9월 7일 한국 개봉한 프랑스의 영화입니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다 잘된거야 메인 포스터
영화 [다 잘된거야] 메인 포스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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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 잘된 거야] 줄거리

    작가인 '엠마뉘엘 (소피 마르소扮)'은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급하게 병원을 찾습니다. 다행히 아버지 '앙드레 (앙드레 뒤솔리에扮)'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엠마뉘엘은 의사로부터 아버지 오른쪽 반신의 신경이 마비되어 남은 생 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습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 '클로드 (샬롯 램플링扮)'에 이어 아버지까지 병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엠마뉘엘은 낙담하지만 불행에서 주저앉지 않고 회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릅니다. 그러나 오랜 치료 기간이 이어지던 중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들은 말 한마디가 엠마뉘엘의 삶을 뒤흔들고 맙니다. "끝내고 싶으니까 도와줘." 아버지는 딸 엠마누엘에게 안락사를 요청한 것입니다. 엠마뉘엘은 처음에는 거절하고 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마음을 바꾸려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완고한 태도에 결국 스위스에 있는 안락사 시설에 연락하게 됩니다. 안락사 절차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날짜가 정해지고 두 딸과 아버지는 마지막 이별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앙드레의 손자인 '라파엘'의 연주회가 안락사가 진행되기로 한 날짜보다 조금 뒤에 개최되게 됩니다. 앙드레는 라파엘의 연주회를 보고 싶어 하고 안락사 일정이 조금 뒤로 미뤄지게 됩니다. 엠마뉘엘과 '파스칼 (제랄딘 팔리아스扮)'은 아버지가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집니다. 하지만 연주회가 끝난 뒤 앙드레는 여전히 안락사 절차를 진행하기 바란다고 이야기합니다. 안락사 절차를 진행하기로 한 당일, 누군가 경찰서에 엠마뉘엘과 파스칼을 신고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불법인 안락사를 진행하려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스위스로 아버지 앙드레를 무사히 이동시키기 위한 해프닝이 벌어지는 가운데, 과연 앙드레는 자신이 원하던 방식대로의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과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

    영화 [다 잘된 거야 (2021)]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작가는 영화 속 주인공인 '엠마뉘엘 베르네임'과 동명인 실제 인물이죠. 작가 엠마뉘엘 베르네임은 영화의 감독인 '프랑수아 오종'과 오랜 친구 사이이자, [스위밍 풀 (2003)], [5 × 2 (2004)] 등의 영화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한 동료였습니다. 2017년 세상을 떠난 친구 엠마뉘엘 베르네임을 위해 감독인 프랑소와 오종은 오랜 고민 끝에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엠마뉘엘이 1인칭으로 써 내려간 원작 소설은 프랑소와 오종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감동을 훼손하지 않고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엠마뉘엘의 자전적인 경험을 정성스레 연마하여 영화의 시나리오가 탄생할 수 있게 되었죠. 감독인 프랑소와 오종은 영화에 대해 "주인공의 상황을 몸소 경험한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개인적인 경험을 영화화 한 이 영화는 안락사에 대해 논쟁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를 보는 각자는 죽음에 대한 감정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작별을 앞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고 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아내는 것을 중점에 뒀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영화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너무 슬프거나 드라마틱한 연출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농담을 곁들인 위트 있는 분위기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죠. 하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영화의 정서는 쓸쓸합니다. 결과적으로 중년에 접어든 딸이 고령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이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길고 설명적인 플래시백 대신 가족들이 형성하고 있는 감정의 역사를 관객들이 유추하게 하는 방식의 짧은 플래시백을 사용합니다. 관객들은 플래시백으로 주어진 정보들의 빈 공간을 상상하며 이들 가족의 관계를 짐작하게 되죠. 엠마뉘엘은 어릴 적 자기중심적인 아버지에게 받은 언어폭력과 정서적 상처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그동안 쌓여온 감정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애쓰는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고령화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처받은 아이는 이미 자기 내부에 자리 잡은 상처에 집착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자라 버린 것이죠. 한마디로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부모의 노년에 다시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될 가족들 사이에 자리 잡은 일종의 차가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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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에 우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영화를 보며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 앙드레와 비슷하게 중풍으로 반신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고통 속에 말년을 보냈던 외할아버지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죠.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 집에서 함께 생활하시며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뒤 하늘로 올라가셨던 외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분들이 앙드레와 같은 부탁을 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봅니다. 감정적, 정신적으로 괴롭고 힘든 일이겠지만 만약 저라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그분들의 의지를 존중해 드렸을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엠마뉘엘과 같은 선택이겠지요.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라면 안락사 절차를 진행하는 대에도 꽤나 큰돈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1만 유로, 한국 돈으로 따지면 천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인데요. 엠마뉘엘에게 안락사 비용을 전해 들은 앙드레는 질문합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하지?" 엠마뉘엘은 대답합니다. "그저 죽기만을 기다려야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죽음을 선택하는 데에도 돈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으신가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 자신의 죽음을 원하는 방식대로 선택한다는 것이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제대로 된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한 채 끝없이 추락하는 자존감으로 자포자기에 빠져버린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다 잘된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댓글을 통해 소통해 주세요!

     

    영화 [다 잘된 거야]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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