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영화/리뷰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가족이라는 이름의 감옥

범블러 2022. 11. 25.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The Apartment with Two Women, 2021)]는 2022년 11월 10일에 개봉한 한국영화입니다. 한국의 영화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한국영화아카데미 (KAFA)' 출신의 신인 '김세인'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메인 포스터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메인 포스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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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줄거리

    20대 후반의 '이정 (임지호扮)'과 50대 '수경 (양말복扮)'은 서로 모녀 관계입니다. 둘은 서로 같은 팬티를 입을 만큼 내밀한 것을 공유하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딸 이정은 어머니 수경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와 답답함, 우울이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어머니 수경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한 모든 것들을 해 준 다 큰 딸이 마치 아기처럼 감정적으로 칭얼거리는 것이 짜증 나고 귀찮으며 때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 티격태격하던 모녀는 마트 주차장 차 안에서 육탄전을 벌입니다. 거의 일방적인 수경의 폭행에 견디다 못한 이정이 차 밖으로 뛰쳐나가고, 이를 바라보던 수경이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며 이정에게 돌진합니다. 보험사 직원이 도착한 뒤 수경은 급발진 때문에 차를 멈출 수 없었다며 모든 책임을 자동차 회사로 돌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정은 보험사 직원에게 자신의 어머니인 수경이 고의로 자신을 들이받았다고 말하죠. 모녀의 감정싸움은 결국 법정으로까지 이어져 재판에서 패소한 수경은 이정을 집 밖으로 내쫓습니다. 한순간에 돌아갈 집이 없어진 이정은 회사 동료인 '문소희 (정보람扮)'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됩니다. 이정은 소희의 집에 한동안 머물며 마음속에 품어왔던 감정과 이야기들을 소희와 나눕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희에 대한 이정의 관심은 소희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죠. 결국 이정은 자신을 피하는 소희를 마주한 뒤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편 이정이 없는 사이 수경은 진지하게 만나는 남자 친구 '종열 (양흥주扮)'과 살림을 합치기 위한 과정을 밟아갑니다. 하지만 종열의 딸인 '소라 (권정은扮)'와 수경의 마찰 때문에 수경 또한 자신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죠.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는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모녀는 끝을 알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다시 한자리에 있습니다. 과연 이정과 수경은 서로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분노와 우울에서 벗어나 관계의 진전을 이룰 수 있을까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듯 사실적인 캐릭터와 이야기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2021)] 속의 캐릭터와 서사들은 매우 사실적입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쉽게 믿을 수 있을 정도이죠. 하지만 영화 속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모두 김세인 감독의 상상에서 비롯된 허구라고 합니다. 다만 감독 자신이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정서 등이 수경과 이정 모녀 관계에 많이 반영되었다고 하네요. 감독은 대중 영화나 TV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서로 다정하고 아름다운 모녀의 모습만 그려지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주변에서 보고 들었던 모녀의 모습들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런 의문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관객들의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김세인 감독은 시나리오의 자료조사를 위해 많은 신문 기사들을 참고했다고 전해집니다. 극 속에서 수경과 이정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사건인 자동차 급발진 또한 뉴스 기사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에피소드라고 하죠. 실제 급발진 사건을 통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많지만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개인이 재판에서 승소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마치 어떤 사회적인 맹신처럼 대기업이 만든 제품에 하자가 있을 리 없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이런 현상 뒤에 자리 잡고 있었고요. 감독은 이런 믿음을 마치 아이를 낳은 엄마라면 당연히 모성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모성신화와 비슷하게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급발진이라는 소재를 영화 속에 끌어오게 된 것이죠. 수경의 일터인 좌훈방 가게의 설정은 독특하면서도 캐릭터의 특성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세인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대중목욕탕을 많이 다녔는데 큰 목욕탕에는 좌훈을 하는 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좌훈을 하기 위해 입은 옷이 연기에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감독은 그 형상이 마치 태동과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좌훈방 가게라는 설정이 영화 속에 들어오게 되었죠. 좌훈방 가게에서 수경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의 감정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작 집에서는 자신의 딸인 이정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이정의 직업은 아동 학습지 출판사 직원입니다. 아동에 관련된 서적을 판매할 때 출판사 측에서는 모성의 죄책감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다른 엄마들은 이미 아이들에게 다 해주고 있다. 당신은 엄마로서 부족하다." 이런 식의 뉘앙스를 서적 판매 홍보에 깔아 두는 것이죠. 이정은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모성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자신 또한 그런 사랑을 당연히 받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우울을 가지고 있고요. 엄마들의 모성애를 계속해서 자극하는 이런 직업이 이정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캐릭터의 직업을 설정했다고 합니다. 수경과 이정 두 인물과 더불어 두 사람이 함께 지내고 있는 작은 아파트 또한 영화 속 마치 또 하나의 인물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수경과 이정은 서로 정리되지 못한 복합적인 감정들을 서로에게 가지고 있죠. 그런 두 사람의 감정처럼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정리해야 할 것을 정리하지 못한 채 작은 아파트 안에는 여러 물건들이 마구 늘어져있습니다. 또한 이정의 공간은 어려서부터 사용해온 가구나 소품들이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사춘기 이후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정의 캐릭터를 공간과 미술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정의 방 외에는 수경이 꾸며놓은 여러 장식품들이 점령하고 있는 모습 또한 수경과 이정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캐릭터와 이야기는 물론 영화 속 공간의 표현과 작은 소품의 디테일까지 신경 쓰며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2021)]는 '너무나도 사실적이다.'라는 인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실감 나는 일상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2021)]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먼저 수경 역할을 맡았던 양말복 배우는 시나리오를 잃고 난 뒤 수경과 이정의 관계에서 자신과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양말복 배우의 어머니 또한 영화 속 수경의 모습처럼 자식들에게 거친 체벌과 상처가 되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힘든 시절을 '살아낸' 사람이기도 했다고 양말복 배우는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했습니다.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생각했을 때 '우리 엄마는 정말 정이 없다!'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의 입장과 생각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런 이해를 통해 양말복 배우는 수경의 캐릭터를 보다 깊이 있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죠. 사람들에게 자칫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는 수경 캐릭터를 관객이 조금이라고 공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고 김세인 감독은 말했습니다. 또한 수경은 각각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인물이죠. 딸인 이정 앞에서는 언제나 짜증과 화가 가득 찬 마녀의 모습이지만 연인인 종열 앞에서는 한없는 소녀의 모습이고 가게의 손님들 앞에서는 또 멀쩡한 사회인으로서의 모습입니다.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소화하기에 양말복 배우가 적격이었다고 김세인 감독은 말했습니다. 이정 역할을 맡은 임지호 배우는 처음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을 망설이다가 마감일 새벽에야 뒤늦게 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김세인 감독은 임지호 배우의 커다랗고 맑은 눈이 눈으로 많은 것들을 표현해야 하는 이정의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임지호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하네요. 시나리오를 읽은 뒤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임지호 배우는 오디션장에서 김세인 감독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임지호 배우의 목소리 질감이라든가 배우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 또한 김세인 감독이 생각하고 있던 이정 캐릭터에 잘 맞아떨어져 임지호 배우의 캐스팅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희 역할을 맡은 정보람 배우의 경우 김세인 감독이 다른 작품을 통해 처음 정보람 배우를 알게 된 후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캐스팅을 위해 만난 자리에서 '적당한 다정함'이라는 키워드의 소희 캐릭터와 어울리는 문소희 배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후 자연스럽게 캐스팅으로 이어졌다고 하네요. 수경의 상대역인 종열 캐릭터의 경우 자칫 내뱉는 대사들이 너무 느끼하다거나 사기꾼처럼 느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세인 감독은 이미 다른 작품을 통해 배역을 맡은 양흥주 배우의 다정한 면과 담백한 이미지를 알고 있었죠. 그리고 이런 배우의 이미지가 종열의 캐릭터가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느끼한 인상을 중화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종열의 딸 소라라든가 아동 서적 출판사 '박 차장 (최경준扮)'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 하나하나가 자신의 몫을 해내며 영화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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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엘레나 페란테

    영화를 보며 내내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들과 결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로스트 도터 (2022)]라는 작품을 통해 엘레나 페란테라는 작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 엘레나 페란테의 초기작인 [성가신 사랑 (1999)]를 찾아서 읽어보게 되었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성신화를 뒤엎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2021)]의 이야기는 영화 [로스트 도터 (2022)]의 정서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국 어머니 놀이를 하고 있는 딸일 뿐."이라는 구절을 소설 속에 담기도 한 작가 엘레나 페란테. 엘레나 페란테는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여성작가이자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찬사를 받고 있는 베스트셀러 저자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신상은 완전히 미스터리 속에 빠져있죠. 그녀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생이라는 것과 일찍이 고향을 떠나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보냈다는 것 정도만 밝혀져 있습니다. 그 외 그녀에 대한 모든 정보는 베일에 쌓여있죠. 작품만이 작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페란테는 어떤 미디어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서면으로만 인터뷰를 허락하고 있습니다. 엘레나 페란테라는 이름마저 그녀의 필명일 뿐 그녀에 대한 확실한 정보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했다면 김세인 감독에게 엘레나 페란테라는 작가를 알고 있는지,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들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는지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엘레나 페란테를 모른다면 그녀의 작품들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었고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경험했고 공감할만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의 무게라든가 거부감 때문에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끄집어내어 펼쳐놓는 용기가 있는 창작자들에게 저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테라든가 한국의 김세인 감독이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영화를 보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댓글을 통해 소통해 주세요!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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