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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 - 언젠가 다시 만나요

범블러 2022. 6. 25.

영화 [노매드랜드 (Nomadland, 2020)]는 2020년 제7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제45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관객상'을 함께 받은 유일한 작품입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 네바다 주의 경제 붕괴 현상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채 밴을 타고 미국 서부를 떠돌아다니며 살아가게 된 주인공 '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 이미지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 이미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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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이라는 빈자리

    혹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소중한 사람, 아끼는 물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던 희망들. 무언가를 상실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큰 구멍을 남기며 때로는 그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상실에 대해 "상실의 빈자리는 결코 상실될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유목민(遊牧民)' 혹은 '유동민(遊動民)'으로 해석되는 '노매드(Nomad)'들은 대부분 그런 상실의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상실이 가져다주는 우울과 공허감에 고립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나 길 위에서 각자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나가죠. 비록 그것이 바닥이 없는 그릇을 채우는 일처럼 끝을 알 수 없이 반복되는 일일지라도 말입니다. 과연 이 세상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실제 유동민의 삶에 기반한 이야기

    영화 [노매드랜드]는 내러티브가 뚜렷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동일한 제목의 논픽션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작자인 '제시카 브루더 (Jessica Bruder)'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 붕괴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원래의 삶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집에서 사는 대신에 캠핑카 안에서 생활하게 된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이후 직접 유목민들의 삶을 따라다니며 관찰한 기록을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죠. 그리고 영화는 그런 유목민들 중 한 명인 가상의 인물 '펀(Fern)'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도로 위 그의 삶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해가고 있습니다. 2011년 1월 31일, 석고보드의 수요 감소로 인해 88년 만에 네바다주 엠파이어에 있던 'US Gypsum' 공장 중 한 곳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뿐 아니라 삶의 터전 자체를 잃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죠. '보''펀' 부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남편 보는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서 한꺼번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 펀은 작은 캠핑카를 개조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뒤 유목민의 삶을 시작합니다. 물류센터, 농장, 국립공원 등 다양한 곳에서 그때그때 가능한 일자리를 찾아 일하면서 펀은 미국 서부 대륙 이곳저곳을 떠돕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광대한 자연을 마주하기도 하며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상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죠. 과연 펀은 길 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힘을 내어 살아갈 이유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유동민의 삶을 연기한다는 것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중 실제 배우는 주인공인 '펀'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펀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같은 유목민 역할의 '데이브'를 연기한 '데이비드 스트라탄' 두 명뿐입니다.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제 유동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원작자인 제시카 브루더가 유동민들의 삶을 연구할 때 만났던 실존 인물들이 영화 속에 출연하여 극의 사실감을 더했다고 합니다. 주인공 펀 역할의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개인적으로 영화 [쓰리 빌보드 (2017)]라는 작품을 통해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배우였습니다. 원작인 책을 접한 뒤 제작자로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 바로 프란시스 맥도먼드라고 전해지기도 하죠. 프란시스는 주인공인 펀의 캐릭터에 실제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 노력 중에 하나로 그녀는 캠핑카 안에 미술소품팀이 마련해 준 소품들이 아닌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채워 넣었습니다. 그 물건들 중에 하나인 '단풍'이라고 불리는 접시세트와 아버지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실제 프란시스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전해지죠. 이렇게 프란시스는 촬영 이외의 시간에도 차 안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내며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그녀를 실제 유목민으로 착각한 업체가 그녀에게 일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하죠. 그녀의 연기가 단순히 유목민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기꺼이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 진심으로 그들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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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use와 Home

    영화의 초반, 펀이 아마존의 물류창고에서 일을 할 때 마트에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가족을 마주칩니다. 그 가족 중에 한 명인 소녀가 펀에게 다가와 펀이 노숙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하죠.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공장이 문을 닫고 오랫동안 살고 있던 삶의 터전을 잃게 된 펀은 한순간에 'House''Home' 모두가 사라지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병으로 목숨을 잃은 절망 속에서 펀이 한 곳에 정착하여 예전처럼 살아가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펀의 마음속에 감당하기 버거운 우울과 상실감이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 모든 것들을 떨쳐내기 위해 시작한 유목민 생활과 '선구자 (Vanguard)'라는 이름을 붙인 삶의 터전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일상이 되고 그 삶에 길들여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House란 기둥이 땅에 박혀있고 움직이지 않는, 몸을 뉘어 쉴 수 있는 곳입니다. Home이라는 것은 보다 정서적인 개념으로 몸과 마음이 함께 쉴 수 있는 곳으로 정의해 볼 수 있겠죠. 펀에게 선구자란 어느새 House이자 Home의 존재로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선구자가 고장 났을 때, 고장 난 선구자를 팔고 새로운 차를 사라는 사람들의 말에 펀은 선구자가 곧 자신의 '집 (Home)'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머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인가요?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펀의 생활이 고되어 보이지만 이것은 그녀가 선택한 삶입니다. 사실 펀이 머물러서 살아갈 곳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초반에 만났던 가족들도, 길거리에서 만난 교회 사람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만난 유동민들 중에서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의 여동생 또한 그녀가 원하면 자신들의 집에서 함께 살아도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펀도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집에서 살아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죠. 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인지 아니면 유목민으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 결국 그녀는 지붕이 있는 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됩니다. 비록 자신을 허락해 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직 어려울지라도 길 위에서의 펀의 삶이 그렇게 위태로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언제나 그녀를 기억하고 염려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언젠가 다시 만나요

    여동생의 집을 떠난 뒤 펀은 다시 유동민들이 함께 무리 지어 살아가는 공동체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펀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었던 다른 유동민인 '스완키 (Swankie)'의 죽음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펀은 유목민 공동체의 대표인 '밥 (Bob)'과의 대화 속에서 서로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상실을 공유하게 되죠. 밥은 유목민으로서의 삶에 대해 펀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One of the things I love most about this life is that there's no final goodbye.

    내가 이 삶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는 바로 마지막 작별인사가 없다는 겁니다.

    You Know, I've met hundreds of people out here and don't ever say final goodbye.

    알다시피 나는 여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마지막 작별인사는 절대 하지 않아요.

    I was just say "I'll see you down the road.". And I do!

    그냥 이렇게 이야기했죠. "나중에 봐요."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합니다!

    And.. whether it's a month or a year or sometimes years, I see them again.

    그게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때로는 수년이 걸려도 그들을 다시 봅니다.

    I can look down the road and I can be certain in my heart that I'll see my son again.

    나는 길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확신할 수 있어요. 내 아들을 다시 만날 거라는 것을요.

    You'll see Bo again. And you can remember your lives together then.

    당신은 보(남편)를 다시 만날 겁니다.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삶을 기억할 수 있겠죠.

     

    영화 [노매드랜드] 메인 예고편

    영화 [노매드랜드]에 대해 주인공인 펀을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이것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삶을 기리는 것에 가까웠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길 위에서 발견하는 희망을 통해 마음속의 큰 구멍이 조금씩, 조금씩, 다시 메워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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