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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의 아내] - 용기 있는 첫 걸음

범블러 2022. 6. 27.

영화 [스파이의 아내 (Wife of a Spy, 2020)]는 2020년에 제작된 일본 영화입니다.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큐어 (1997)]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연출 및 각본을 맡은 작품입니다. 일본 영화로서는 거의 최초로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고발을 다루고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 메인 포스터
영화 [스파이의 아내] 메인 포스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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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기 있는 첫걸음

    혹시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록 그것이 자신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일일지라도 그 집단의 어른으로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일본은 같은 패전국인 독일과 비교했을 때 전쟁의 피해자인 주변국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의 시대 정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하거나 자신들을 오히려 전쟁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또한 일반 국민들에게는 왜곡된 과거사 교육이 이루어져,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신성한 것으로 여기거나 '욱일기'를 강하고 멋진 것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과거 잘못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해온 사람은 제가 알기로는 세계적인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가 전부였죠. 이는 일본 영화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종전 이후 일본의 영화들은 오히려 억울함과 피해의식들로 가득 차 있었죠. 그런 일본의 현실 속에서 마치 가뭄의 단비와도 같이 일본의 전쟁 범죄들에 대한 최초의 양심선언을 담은 한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인 [스파이의 아내]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것은 실화인가?

    영화 [스파이의 아내]는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듯한 연출과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사실들과 캐릭터들의 디테일한 심리묘사 등으로 더욱 그런 의혹이 깊어졌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후 행적을 알리는 자막이 떠오르며 관객들이 허구가 아닌 실제의 이야기처럼 영화를 바라보도록 유도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자막이 없어 극장을 나서면서도 조금 헷갈렸던 것 같습니다. 이후 자료를 조사하며 살펴보니 영화 속의 캐릭터나 이야기는 허구를 담고 있지만 만주의 731부대에 대한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사실들을 보다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각본의 원안을 맡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이야기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무게가 상당한 만큼 관객들이 조금 더 진지한 태도로 영화를 관람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영화의 분위기나 연출, 자막 등에 신경을 쓴 것이 아닌가 싶네요.

    배우와 캐릭터에 대하여

    영화의 초반부, 시조카인 후미오가 사토코를 '외숙모'라고 부르는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2001)]이나 [하나와 앨리스 (2004)] 등의 멜로 장르 영화에 출연하며 일본의 '국민 여동생'으로 불려 온 '아오이 유우' 배우의 이미지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아오이 유우의 외모도 한몫했던 거 같고요. 아무튼 그런 저의 선입견과는 상관없이 '후쿠하라 사토코' 배역을 맡은 아오이 유우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초반에는 먹고 살 걱정 없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중산층 부인의 모습. 중반에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지만 남편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계획을 알게 된 후에는 오히려 비장하고 단호하게 사건을 주도해나가는 모습. 후반에는 남편과 함께 대의를 이룰 생각에 약간은 들떠 스릴을 즐기는 모습. 그리고 결국 남편에게 배신당한 것을 깨달은 후에는 반쯤 넋이 나간 채 "훌륭하다!"라는 대사를 외치며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그야말로 훌륭하게 표현해내며 이제는 어엿한 한 명의 배우로 성장했음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아오이 유우의 명연기와는 별개로 '사토코'라는 캐릭터 자체는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임에도 사건을 주도해나가는 것이 아닌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있는 모습. 물론 그것이 그 당시의 여성상이라거나 영화의 서사에 도움이 되는 캐릭터의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토코 캐릭터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관련된 비판이나 '남성 중심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 캐릭터의 현실'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전 작품 활동 중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영화들에 출연하며 우익이 아니냐는 논란에 서있기도 했던 아오이 유우는 이 작품을 통해 그런 시선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스스로를 '코즈모폴리턴'이라고 칭하며 일본의 국익보다는 범세계적인 정의를 우선시해 전쟁 중에 일본이 저지르고 있는 추악한 범죄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후쿠하라 유사쿠'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생소한 배우인 '타카하시 잇세이'가 맡아 연기했습니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단역과 조연 등을 마다하지 않고 작품경력을 쌓아왔습니다. 여러 작품들에서 주연을 맡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비밀이 많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캐릭터인 유사쿠를 맡아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함께 은밀한 분위기를 풍기며 비교적 캐릭터의 모습을 잘 형상화했다고 느꼈습니다. 영화에서의 처음 등장부터 유사쿠는 햇빛이 쏟아지는 창을 등지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먼저 건물 밖의 현대적인 모습을 가리기 위한 장치입니다. 또한 영화의 중간중간에 이와 비슷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며, 마음속에 큰 뜻을 품고 있지만 그 속내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유사쿠의 캐릭터를 빛을 통해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사쿠의 캐릭터 자체는 자칫 일본인들에게 불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처지와도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실제 일본의 커뮤니티에서는 영화 [스파이의 아내]에 대한 평들 중 좌익 반일 영화로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역사를 마음대로 담았다는 비난 또한 많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상냥하고 다정한 마음을 지녔지만 지금은 군인의 옷을 입고 헌병대 분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츠모리 야스하루'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는 아명(兒名)인 '타이지'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타이지는 후쿠하라 부부와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죠. 배역을 맡은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개인적으로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2014)] [기생수 파트 1 (2015)] 등의 작품으로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배우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영화의 원작인 TV 드라마가 2020년 6월에 NHK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 1월에 마사히로의 불륜 스캔들이 터지며 드라마의 흥행에 영향을 미친 모양입니다.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배우 '카라타 에리카'와 무려 3년 동안이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것이죠. 아내가 임신하고 있는 기간 동안에도 그 관계를 이어온 것이 밝혀지며 결국 스캔들이 터진 지 6개월 만에 마사히로와 그의 아내였던 '안'은 이혼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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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사쿠의 마음

    영화 [스파이의 아내]는 그 내용면에서 서스펜스와 스릴러 영화의 대가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히치콕 특유의 '위기에 빠진 여자' 캐릭터를 앞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 그런 평가에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파이의 아내]는 히치콕의 영화들이 으레 가지고 있는 서스펜스를 점점 고조시켜 절정 부분에서 그 긴장감을 터뜨리는 식의 연출이 배제되어 그 결이 서로 다르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이 영화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관객들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법은 바로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연출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바로 '유사쿠'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서까지 관객은 유사쿠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정황들과 유사쿠가 보여준 말과 행동 등으로 그 마음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죠. 유사쿠가 사토코를 미국에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혹자는 사토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는 사토코가 자신의 조카를 고발한 것에 대한 유사쿠의 복수라고 말할 수도 있죠. 애초에 사토코를 미국에 데려갈 만큼 유사쿠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다 말이 됩니다. 영화가 유사쿠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아마도 TV 드라마 원작을 영화화하면서 생략된 내용들도 꽤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토코와 유사쿠가 어떤 과정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지. 유사쿠는 결혼 전부터 코즈모폴리턴으로서 어떤 활동을 해오고 있었던 것인지. 부부와 타이지는 어린 시절 어떤 관계였는지 하는 것들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은 이야기들 중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남았습니다. 과거의 잘못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분명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해묵은 감정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는 개인적으로 그런 작은 희망의 첫걸음을 내딛는 영화라고 생각해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오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댓글을 통해 소통해 주세요!

     

    영화 [스파이의 아내]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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