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영화/리뷰

영화 [자산어보] - 백성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

범블러 2022. 7. 6.

영화 [자산어보 (The Book of Fish , 2019)]는 2021년 3월 31일 개봉한 한국영화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자산어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작들을 통해 시대극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자산어보 1차 포스터
영화 [자산어보] 1차 포스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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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

    "그리하여 내가 섬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아 어보 (漁譜)를 짓고자 했으나 사람마다 말이 달라 딱히 의견을 좇을 만한 이가 없었다. 그런데 섬 안에 덕순 (德順) 장창대 (張昌大)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면서 독실하게 옛 서적을 좋아했다. 집이 가난해 책은 많지 않은 점을 볼 때, 그가 비록 손에서 책을 놓지는 않았지만 보는 눈은 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품이 차분하고 꼼꼼해 귀와 눈에 수용되는 모든 풀, 나무, 새, 물고기 등의 자연물은 세밀하게 살펴보고 집중해서 깊이 생각해 이들의 성질과 이치를 파악했기 때문에 그의 말은 신뢰할 만했다. 결국, 나는 그를 초청하고 함께 숙식하면서 궁리한 뒤, 그 결과물을 차례 지어 책을 완성하고서 이를 [자산어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것은 조선시대 후기 인물이었던 '정약전'이 집필한 책인 [자산어보]의 서문에 등장하는 글입니다. '정약용'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목민심서] 라거나 [경세유표]와 같은 저서와 함께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형인 정약전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계신 분들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약전은 조선시대 통치이념이었던 '성리학'에만 빠져있었던 다른 양반들과는 달리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서양의 학문이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실용적인 학문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시대를 앞서 나가는 면모를 보여주었던 참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서가 바로 [자산어보]입니다. [자산어보]에는 그가 시대의 풍파로 인해 유배되어 가게 되었던 흑산도에서 마을 주민들이 주식으로 삼던 수산물들에 대한 여러 가지 자세한 기록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정약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자산어보]를 집필하게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실들에 영화적인 상상력을 더하여 만들어진 한 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인 [자산어보]가 그 주인공입니다.

    역사적인 흐름

    1800년 8월 18일,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가 승하한 뒤 정조의 아들인 '순조'가 정조를 이어 왕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당시 순조는 11살의 나이로 아직 정사를 돌볼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당시 조선 왕실에서 가장 큰 어른이었던 영조의 계비이자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죠. 이에 따라 그녀를 중심으로 한 노론 강경세력이 정조 재위 시기 유력하게 성장한 남인계 인사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기 위해 그들을 압박합니다. 당시 서양의 학문을 가까이하고 천주교를 섬기던 남인 세력들을 조상들의 제사도 제대로 모시지 않는 역적으로 몰아 잡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약전'을 비롯한 그의 형제 '정약종', '정약용' 또한 혐의를 받고 의금부로 끌려오게 되죠. 결국 끝까지 천주교를 따른 정약종은 참수당하고 정조와의 편지 등에서 천주교를 멀리한 것이 밝혀진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유배지인 전라남도의 외진 섬 흑산도에서 정약전은 주민들이 주식으로 삼는 수산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관심에 따라 어류들의 명칭, 분포, 생태, 유용성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자산어보]를 집필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죠. 책을 좋아하여 글자를 깨우치고 물고기에 해박한 마을의 어부 '창대'가 사학죄인이라는 이유로 약전을 멀리하는 상황 속에서 과연 정약전은 무사히 [자산어보]의 집필을 완료할 수 있을까요?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이야기

    영화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이 영화 [동주 (2016)]에 이어 두 번째로 시도하는 흑백영화입니다. 이준익 감독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들을 흑백의 화면에 담아낼 때 그 시대와 인물의 이야기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믿음에 부흥하여 영화 속에 담아낸 광활한 자연의 풍경과 그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울림의 수묵화처럼 조용하지만 운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영화의 제작진은 보다 완성도 높은 흑백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 의상과 소품이 가진 질감과 윤곽을 부각했습니다. 색이 배제된 옷이나 사물이 흑백 화면에서도 온전하게 시각화될 수 있도록 제작진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입니다. 배우들 또한 캐릭터들의 섬세한 감정이 더욱더 강하게 표현되는 흑백 화면의 특성에 맞추어 매 순간 관객들에게 인물로서의 진심이 닿을 수 있도록 다른 작품보다 더 신경 쓰며 연기했다고 하네요.

    창대와 별장의 캐릭터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등장인물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바로 '창대''별장'이었습니다. 창대는 책 [자산어보]의 서문에만 잠깐 이름이 등장하여 영화 속 주요 인물들 중 각본과 연출에서 가장 많은 상상력이 더해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흑산도에서 나고 자란 창대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글공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년 어부로 그려집니다. 창대는 양반의 서자로서 나라의 통치이념인 성리학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 백성을 위한 길이라 굳게 믿고 있어 영화의 초반에는 사학죄인인 정약전을 멀리하는 고지식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죠.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의 내용들을 정약전이 창대를 위해 풀어주는 대신 창대는 정약전을 위해 물고기들에 대한 온갖 지식들을 나눠주는 거래를 하면서 둘 사이는 급격하게 가까워집니다. 배역을 맡은 '변요한' 배우는 어부인 창대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직접 어류 손질법을 훈련받으며 극에 사실감을 더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전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지인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혼자서도 사투리로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고 합니다. 별장 캐릭터는 정약전의 유배지인 흑산도를 관장하며 약전이 처음으로 흑산도에 도착했을 때 그가 머물만한 집을 정해 주기도 하는 역할로 등장합니다. 별장 캐릭터는 관직을 돈으로도 살 수 있었던 당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별장은 천자문 정도밖에 떼지 못한 글공부 실력으로 어부인 창대에게 조차 밀려 창피를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죠. 배역을 맡은 '조우진' 배우는 마치 실제의 인물이 영화 속으로 튀어나온 듯 소심하고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밝은 별장 역할을 맛깔나게 표현했습니다. 특유의 표정과 눈빛, 몸짓 등이 아주 인상적이었죠. 비록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등장할 때마다 확실하게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역사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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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 vs 정약전

    사실 대중적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은 정약용이고 그것은 그가 생애 동안 500권 이상의 책을 집필하며 조선 후기에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줄곧 형인 정약전이 아우인 정약용 보다약용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잠시 등장한 임금 정조도 약전이 약용 보다 나음을 이야기했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창대가 약전의 명에 의해 약용의 유배지인 강진에 찾아가 약용과 함께 나누는 대화 속에서 약전이 약용보다 나음이 잘 드러납니다. 약용이 쓰는 책의 내용 중에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약용은 약전에게 서신을 보내 물으며 약전의 대답이 언제나 약용의 답답함을 해결해주고 새로운 시선으로 그를 인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창대는 어째서 약전이 약용과 같이 성리학을 바탕으로 나라의 운영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아닌, 일견 하찮아 보이는 물고기들의 이름이나 종류 등을 정리하는 책을 쓰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합니다. 이러한 물음에 약전은 자신은 약용과 달리 현재의 왕을 중심으로 한 군주제를 지지하지 않으며, 임금이 없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꿈꾸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글로 옮길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일찍이 서양의 학문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 약전이 당시 프랑스혁명 등으로 점차 그 위세를 키워가던 서양의 민주주의를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 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역사에 기록된 것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백성들을 위한 실용적인 학문들에 관심을 가지고 서양의 학문들에도 밝았던 약전의 모습에서 생각해볼 때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고 여겨졌습니다. 결국 약용은 체제 안에서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약전은 그것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현재의 민주주의를 고민했다고 말하는 것이니, 어떤 면에서는 약전이 약용 보다 낫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역사 속 일화들을 찾아보는 재미

    영화 제작에 앞서 다양한 문헌 사료와 전문 서적들을 검토한 이준익 감독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일화들을 영화 [자산어보] 전반에 배치하며 관람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먼저 책 [자산어보]를 비롯한 정약전의 다양한 저술서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집필되었을지 상상하여 영화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정약용이 지은 한시와 극 중의 인물들이 처해있는 상황들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영화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죠. 뿐만 아니라 [자산어보]는 역사적, 문학적 교육 자료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 가거 댁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밭에 자라나는 작은 소나무들을 뽑아내는 것을 보며 정약전이 그 이유를 묻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소나무 벌채 금지 정책에 대해 저술한 [송정사의]의 집필 배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물 장수 문순득이 태풍을 만나 일본과 필리핀을 거쳐 떠돌다가 중국을 거쳐 다시 고향에 돌아오게 된 일화를 담은 [표해시말]의 집필 배경도 등장합니다. 이는 정약전이 외국 문물에도 깨어있으며 민중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 속 유배 길에 오른 정약전과 정약용이 갈림길에서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율정별(栗亭別)'을, 술에 취한 약전이 밤바다를 거니는 장면에서는 '봉간손암(奉簡巽菴)'을 내레이션으로 삽입합니다. 이 부분은 영화의 초반,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배 길에 올라야만 했던 두 형제의 서글픈 처지를 정약용의 한시를 통해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죠. 이처럼 [자산어보]는 역사 속의 일화들과 정약용의 아름다운 한시들을 영화 속에 가미하며 그 풍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영화 [자산어보] 1차 예고편

    영화 [자산어보]는 백성들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을 지녔지만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던 인물인 '정약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낸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댓글을 통해 소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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